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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국 대학생 일본어 번역대회 모범답안 공개 총관리자
2020.11.19 10:50

 2020년(제8회) 전국 대학생 일본어 번역대회 모범답안 공개

   번역대회 출제문제 및 모범답안  

    
2020년도 제8회 전국 대학생 일본어 번역대회에 참가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 드립니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여 저마다의 일본어 번역 실력을 겨루어 주셨습니다.
아래에 모범 답안을 공개합니다. 이 번역 답안이 베스트는 아닙니다만, 하나의 모범 답안이라 생각하시고 자신의 것과 비교하여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대회참가를 계기로 일본어 번역에 대해 더욱 흥미를 갖고 번역 실력을 연마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일본어를 학습하는 여러분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 1교시 일한번역 > 

<問題1> 抗体の多様性

  多様な抗原に対しては、その抗原それぞれに対応する可変部をもった抗体が必要とする。抗体の遺伝子の数は必要な抗体の種類よりきわめて少ないが、抗体の可変部のアミノ酸配列を指定している遺伝子が次のようなしくみによって多様化されることで、多種類の抗体がつくられている。
 同じ個体の体細胞は、同じゲノムをもっている。しかし、B細胞とT細胞では、分化する際に、特定の遺伝子に関して遺伝子の“連結”による“再編成”が行われる。成熟したB細胞は、1個につき1種類の可変部をもった免疫グロブリンをつくるが、たとえばヒトの場合、未分化なB細胞にある免疫グロブリンのH鎖の遺伝子領域の中には、可変部の遺伝子であるV遺伝子が40種類、D遺伝子が25種類、J遺伝子が6種類、そして定常部の遺伝子が並んでいる。B細胞が成熟する間に、V, D, J遺伝子からそれぞれ1つずつ選ばれて“連結”され、“再編成”される。すると、このH鎖の可変部の遺伝子の組み合わせは 40 X 25 X 6=6000通りになる。一方、L鎖の可変部にはH鎖とは異なるV遺伝子とJ遺伝子があり、同様の“連結”と“再編成”によって320通りの組み合わせが生じる。そのため、H鎖とL鎖とからなる抗体の可変部の遺伝子の組み合わせは、192万通りにもなる。
 このしくみは、1977年に利根川進によって解明され、この功績によって、利根川は1987年にノーベル生理学・医学賞を受賞した。

❊出典:数研出版 『生物』より

 

 <문제1> 항체의 다양성

  다양한 항원에 대해서는 그 항원 각각에 대응하는 가변부를 가진 항체가 필요하다. 항체의 유전자 수는 필요한 항체의 종류보다 극히 적지만 항체 가변부의 아미노산 배열을 지정하고 있는 유전자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다양화됨으로써 여러 종류의 항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같은 개체의 체세포는 같은 게놈을 갖고 있다. 그러나 B세포와 T세포에서는 분화할 때 특정 유전자에 대해 유전자의 "연결"에 의한 "재편성"이 이루어진다. 성숙한 B세포는 1개당 1종류의 가변부를 가진 면역글로불린을 만드는데, 예를 들면 사람의 경우 미분화한 B세포에 있는 면역글로불린의 H사슬 유전자 영역 안에는 가변부 유전자인 V유전자가 40종류, D유전자가 25종류, J유전자가 6종류, 그리고 정상부 유전자가 배열되어 있다. B세포가 성숙하는 동안 V, D, J유전자에서 각각 1개씩 선택되어 "연결"되고 "재편성"된다. 그러면 이 H사슬 가변부의 유전자 조합은 40 X 25 X 6=6000가지가 된다. 한편 L사슬 가변부에는 H사슬과는 다른 V유전자와 J유전자가 있고, 마찬가지 "연결"과 "재편성"에 의해 320가지 조합이 생긴다. 따라서 H사슬과 L사슬로 구성되는 항체 가변부의 유전자 조합은 192만 가지나 된다.
 이 메커니즘은 1977년에 도네가와 스스무에 의해 밝혀졌으며, 이 공로로 도네가와는 1987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수연출판 『생물』에서



<問題2> 花見

  春を表す日本の古いことばに、「桜時」というのがある。昔から、桜の花に特別の愛着をもっている日本人ならではの言い方だが、その桜の花を心ゆくまで眺めて春をめでようというのが、日本の花見である。
 格式の高いところでは、「観桜(かんおう)会」といって、皇室や内閣総理大臣が各界の著名人や各国の大使など数千人招いて行う盛大なものもあるが、一般に行われる花見は、家族や町内、職場の気のあった仲間どうしで楽しむ、もっと庶民的なものである。庶民の花見に付き物なのが宴会で、枝ぶりのよい桜の木の下にござやビニールシートを敷いて陣取り、料理や酒やカラオケを持ち込んで、飲めや歌えや踊れの大騒ぎとなる。東京の上野公園のような桜の名所となると、その宴席を確保するための陣取り合戦がまたたいへんで、各グループの先発隊が前日から乗り込み、眺めのいい場所を巡って「こっちが先だ」「いや、こっちだ」と小競(こぜ)り合いを演じる狂騒ぶりである。
 花見の歴史は古く、平安時代の812年に宮中で行われた桜の花宴がその始まりとされている。豊臣秀吉が1598年に京都の醍醐(だいご)寺で開いた「醍醐の花見」は、その豪華さで史上最も有名だが、花見が庶民の行事となったのは江戸時代に入ってからのことで、葛飾北斎(かつしかほくさい)の『富岳(ふがく)三十六景』には、花見に興じる江戸町民の様子が鮮やかに描かれている。
 桜の名所として有名なのは、日本一の誉れ高い奈良県・吉野山。俗に「吉野千本桜」とよばれるたくさんの桜が山すそから頂上まで植えられ、春には山が花で埋まる。京都の嵐山や、世阿弥(ぜあみ)の謡曲「桜川」で知られる茨城県・桜川なども多くの花見客でにぎわう。

❊出典:学習研究社 『日本タテヨコ』より
 

<문제 2> 하나미(벚꽃놀이)

  봄을 나타내는 일본의 옛말에 「사쿠라도키(벚꽃철)」라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벚꽃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일본인 특유의 표현인데 그 벚꽃을 마음껏 바라보며 봄을 찬미하고자 하는 것이 일본의 “하나미”다.
 격식이 높은 곳에서는 「간오카이(관앵회)」라고 하여 왕실과 내각총리대신이 각계의 저명인사와 각국 대사 등 수 천명을 초대하여 실시하는 성대한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미는 가족이나 동네, 마음 맞는 직장 동료끼리 즐기는 좀 더 서민적인 것이다. 서민들의 하나미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회로, 가지가 아름답게 늘어진 벚나무 밑에 돗자리나 비닐시트를 깔고 자리를 잡고 요리와 술, 노래방 기계를 들고 와서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떠들썩한 자리가 된다. 도쿄의 우에노 공원과 같은 벚꽃 명소쯤 되면 그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 또한 대단해서, 각 그룹의 선발대가 전날부터 들어가서 전망이 좋은 장소를 둘러싸고 「우리가 먼저다」 「아니, 우리가 먼저지」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한다.
 하나미의 역사는 오래되어 헤이안 시대인 812년에 궁중에서 실시된 벚꽃 화연이 그 시초라고 여겨지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에 교토의 다이고지 절에서 개최한 「다이고의 하나미」는 그 호화롭기가 사상 최고로 유명하지만, 하나미가 서민들의 행사가 된 것은 에도시대에 접어든 이후의 일이며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부악(후지산) 36경」에는 하나미를 즐기는 에도 서민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벚꽃 명소로 유명한 곳은 일본 제일로 꼽히는 나라현 요시노산. 흔히 '요시노 센본 벚꽃'이라 불리는 수많은 벚나무가 산기슭에서 꼭대기까지 심어져 있어 봄에는 산이 꽃으로 뒤덮인다. 교토의 아라시야마와 제아미❊1의 요쿄쿠❊2 「사쿠라가와」로 유명한 이바라키현 사쿠라가와 등도 많은 하나미객으로 붐빈다.

❊1:제아미(世阿弥, 1363년 경~1443년 경)는 일본의 전통 가무극인 노가쿠(能樂)를 완성한 예능인.

❊2:요쿄쿠(謡曲)는 노가쿠의 대사 혹은 음악으로, 여기에서는 그 대사를 말함. 

❊출처: 학습연구사 『일본다테요코』에서



 <問題3> 外国為替市場

  日本にある銀行の中には、貿易や資本移動の結果にともなう通貨交換の結果、ドル資産をへらしているものもあれば、反対に増加させているものもある。資産バランスの回復をはかるために、前者はドルを買い、後者ドルを売りたいと思うであろう。こうして銀行間で外貨の売買が行われることになる。
 外貨を売買する市場が外国為替市場である。外国為替市場は、銀行間で通貨の取り引きが行われるインターバンク市場と、個人、商社、メーカーなどの顧客と銀行との間で取引が行われる対顧客市場とから成り立つ。インターバンク市場は売り手と買い手が電話で売買を行う(普通は間に為替ブローカーを立てて行われる)テレフォン・マーケットであり、為替レートは取引量が多いインターバンク市場で決まる。なお、為替レートの変動が激しいとき、中央銀行はインターバンク市場に介入し、銀行と外貨の売買を行ってレートを安定させようとする。これを公的介入(平行操作)と呼んでいる。

国際収支と為替レート
 貿易や国際資本移動など、国際間の経済的取引の結果、資金の受け取りと支払いが発生する。すべての取り引きを商品の取り引き、サービスの取り引き、対外直接投資や証券投資などの資本の取り引きに分け、それぞれの取り引き項目の一定期間の収支尻を記録したものが国際収支である。国際収支は商品やサービスなどの取引収支である経常収支と、資本の取引収支である資本収支に大別される。貿易収支は商品の輸出入による収支であり、経常収支の1項目である。
 通貨と通貨の交換比率である為替レート(為替相場)は国際収支を調節する動きをもち、国際収支の動向は逆に為替レートに影響を及ぼす。例えば、日本の対米貿易黒字が続いていると、ドルを円にかえようとする動きが強まるから、円高ドル安になる傾向がある。一方、円高ドル安は黒字幅を縮小させる動きをもつ。しかしこれは理論上の話であって、実際には資本移動や投機にともなう通貨の交換も為替レートに影響をおよぼす。しかもこの資本移動には、内外の金利差などさまざまな要因が影響を与える。このように、為替レートを決める要因は多種多様である。

❊出典:東京書籍 『政治・経済』より

 

<문제3> 외환시장

  일본에 있는 은행 중에는 무역이나 자본이동 결과에 따른 통화교환의 결과 달러 자산이 줄어든 은행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증가된 은행도 있다. 자산균형의 회복을 꾀하기 위해 전자는 달러를 매입하고 후자는 달러를 매도하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은행 간에 외화 매매가 이루어지게 된다.
 외화를 사고파는 시장이 외환시장이다. 외환시장은 은행 간에 통화 거래가 이뤄지는 인터뱅크 시장과 개인, 상사, 제조업체 등 고객과 은행 간에 거래가 이뤄지는 대고객 시장으로 구성된다. 인터뱅크 시장은 매도자와 매입자가 전화로 매매를 하는 (보통은 중간에 외환브로커를 내세워 이뤄지는)텔레마켓이며 환율은 거래량이 많은 인터뱅크 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리고 환율 변동이 심할 때 중앙은행은 인터뱅크 시장에 개입하여 은행과 외화 매매를 통해 환율을 안정시키려고 한다. 이것을 공적개입(평행조작)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제수지와 환율
  무역이나 국제자본이동 등 국제간 경제적 거래의 결과 자금의 수취와 지불이 발생한다. 모든 거래를 상품 거래, 서비스 거래, 대외 직접투자나 증권투자 등 자본 거래로 나누고, 각 거래 항목의 일정 기간의 수지 결과를 기록한 것이 국제수지다. 국제수지는 상품이나 서비스 등의 거래수지인 경상수지와 자본의 거래수지인 자본수지로 대별된다. 무역수지는 상품의 수출입에 의한 수지이며 경상수지의 한 항목이다.
 통화와 통화의 교환비율인 환율(외환시세)은 국제수지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국제수지 동향은 반대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지속되면 달러를 엔화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강해지므로 엔화 강세 달러 약세가 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엔화 강세 달러 약세는 흑자폭을 축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상의 이야기로서 실제로는 자본이동이나 투기에 따른 통화 교환도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 자본이동에는 국내외 금리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환율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종다양하다.

❊출처: 도쿄서적 『정치·경제』에서

 



 <2교시 한일번역>

<문제1>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명칭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뒤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초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기 전염병으로만 알려졌으나,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1월 9일 해당 폐렴의 원인이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 2월 11일 명명)라고 밝히면서 병원체가 확인됐다.
 중국 정부는 2020년 1월 21일 우한 의료진 1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코로나19의 사람 간 감염 가능성을 공식 확인했는데, 이 의료진 감염 여부는 사람 사이의 전염을 판별하는 핵심 지표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감염 확산세가 이어지자, WHO는 1월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속출하자 WHO는 3월 11일 홍콩독감(1968), 신종플루(2009)에 이어 사상 세 번째로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했다. 
 이 질환은 초기 '우한 폐렴'이라고 불려졌으나, 세계보건기구(WHO)가 2015년 내놓은 ▷지리적 위치 ▷사람 이름 ▷동물·식품 종류 ▷문화 ▷주민·국민 ▷산업 ▷직업군이 포함된 병명을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에 따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불렸다. 그러다 WHO는 2020년 2월 11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공식 명칭을 'COVID-19'로 정했다고 발표했는데, 여기서 'CO'는 코로나(corona), 'VI'는 바이러스(virus), 'D'는 질환(disease), '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처음 보고된 2019년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 정부는 2월 12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한글 공식 명칭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국문 약칭 코로나19)로 명명한다고 발표했다.

❊출전 : 시사상식사전 『코로나바이러스』에서

 <問1>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19の名称

  2019年12月、中国の武漢で初めて発生して以来、中国全域と全世界に広がった呼吸器感染疾患である。 初期は原因不明の呼吸器伝染病としてだけ知られていたが、世界保健機関(WHO)が2020年1月9日、当該肺炎の原因が新しいタイプのコロナウイルス(SARS-CoV-2、国際ウイルス分類委員会により2月11日命名)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病原体が確認された。
 中国政府は20年1月21日、武漢の医療陣15名が確定判定を受けたとし、コロナ19の人同士による感染の可能性を公式に確認したが、この医療陣の感染の可否は人から人への伝染を判別する重要な指標となっている。その後、感染の拡大が続くと、WHOは1月30日に「国際的公衆保健非常事態」(PHEIC)を宣言した。そうした中、コロナ19の確定者が全世界で続出すると、WHOは3月11日、香港インフルエンザ(1968)、新型インフルエンザ(2009)に続き、コロナ19に対し史上3番目のパンデミック(世界的大流行)を宣言した。 
 この疾患は当初「武漢肺炎」と呼ばれていたが、世界保健機関(WHO)が2015年に発表した▷地理的位置▷人名▷動物·食品の種類▷文化▷住民·国民▷産業▷職業群が含まれた病名の使用を禁止する勧告から、「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と呼ばれていた。その後WHOは2020年2月11日、新種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の公式名称を「COVID-19」に決めたと発表したが、ここで「CO」はコロナ(corona)、「VI」はウイルス(virus)、「D」は疾患(disease)、「19」は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発病が初めて報告された2019年を意味する。これにより韓国政府は2月12日、「新型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のハングル公式名称を「コロナウイルス感染症-19」(韓国語略称コロナ19)と命名すると発表した。

❊出典:時事常識辞典『コロナウイルス』より
 

<문제2> 임진왜란 전, 마지막 통신사

  임진왜란 전 마지막으로 파견된 통신사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지를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신하들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다투고 있었습니다. 통신사 가운데 정사인 황윤길은 서인이었고, 부사인 김성일은 동인이었습니다. 일본을 다녀온 뒤, 서인 쪽 황윤길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범상치 않은 인물로 싸움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드시 조선을 침략해 올 것입니다.” 하지만 동인 쪽 김성일은 반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눈이 쥐와 같으니 두려워할 인물이 아닙니다. 전쟁이 일어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두 통신사가 정반대의 보고를 하자 조정은 갈팡질팡했습니다.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극복해 나간 과정을 적은 『징비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인이던 유성룡은 친구인 김성일을 따로 불러 물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했소?” 그러자 김성일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도 일본이 절대 쳐들어오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민심이 동요될까 봐 그렇게 말한 것이오.” 안타깝게도 당시 더 힘이 셌던 동인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선은 전쟁 준비를 하지 않았고, 준비 없이 임진왜란을 치러 내야 했지요.
 
임진왜란 후, 일본은 왜 조선에게 통신사를 요청했을까?
  당시 조선은 일본에 비해 군사나 경제는 몰라도, 문화로는 앞섰습니다. 조선의 통신사가 방문할 때마다 일본은 자연스럽게 선진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지요.
 쇼군의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습니다. 쇼군이 즉위할 때마다 문화 선진국인 조선의 통신사가 와서 일본의 각지를 돌며 축하해 주면, 각 지방을 다스리는 다이묘들과 백성들은 더욱 쇼군을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비용을 각 지방의 다이묘에게 부담 지워 다이묘들의 경제력을 약화하게 되니 쇼군에게 대들지 못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중국과 국교가 단절된 일본은 조선과 관계를 회복해 외교적 고립을 피해 보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하 생략>

❊출전 : 토토북 『조선통신사』 에서

 

<問2>文禄·慶長の役以前、最後の通信使

  文禄·慶長の役以前に最後に派遣された通信使は、日本が戦争を起こすかどうかを調べるのが目的でした。 当時、朝鮮の臣下たちは東人と西人に分かれ、争っていました。 通信使の中で正使のファン·ユンギル(黄允吉)は西人で、副使のキム・ソンイル(金誠一)は東人でした。 日本から帰ってきた後、西人側のファン·ユンギルはこう報告しました。 「豊臣秀吉は尋常ではない人物で、戦いを好むように見えました。 必ず朝鮮を侵略してくるでしょう」。しかし、東人側のキム・ソンイルは反対意見を出しました。 「豊臣秀吉は目がねずみのようなもので、恐れるような人物ではありません。 戦争が起こる心配はしなくてもよさそうです」。両通信使が正反対の報告をすると、朝廷は戸惑いました。 
 リュ・ソンリョン(柳成龍)が文禄·慶長の役を克服した過程を記した『懲毖録』によると、このような逸話が記されています。 東人だった柳成龍は、友人のキム·ソンイルを呼んで尋ねました。 「戦争が起こったらどうするつもりでそう言ったんですか?」そう聞くと、キム・ソンイルはこう答えたといいます。 「私も日本が絶対に攻めてこないとは思わない。民心が動揺するのではないかと心配でそう言ったのです」。残念ながら当時、もっと力の強かった東人の意見を受け入れ、朝鮮は戦争の準備をせず、なんの備えもなしに文禄·慶長の役を克服せざるを得なかったのです。

文禄·慶長の役の後、日本はなぜ朝鮮に通信使を要請したのか。

  当時の朝鮮は、日本に比べて軍事や経済はともかく、文化の面では優位に立っていました。 朝鮮の通信使が訪れるたびに、日本は自然に先進文化を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ました。
 将軍の政治的な計算もありました。 将軍が即位するたびに、文化の先進国である朝鮮の通信使が来て、日本の各地を回りながらお祝いしてくれると、各地方を治める大名と民はさらに将軍を敬うようになりました。しかもその費用を各地方の大名に負担させ、大名の経済力を弱体化することで、将軍に刃向かわないようにする一石二鳥の効果がありました。文禄·慶長の役により中国と国交が断絶した日本は、朝鮮との関係を回復し、外交的孤立を避けようという意図もありました。 <以下省略>

❊出典:トトブック『朝鮮通信使』から

 
<문제3>취재 현장에서 자원 입대한 기자

  1950년 9월 7일 도쿄 간다 메이지대학 근처의 스루가다이호텔은 이른 아침부터 흰 색 와이셔츠와 검은 색 양복바지 차림에 사각의 대학모를 눌러 쓴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기합을 넣어주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가족끼리 모여 앉아 흐느끼는가 하면, 아들의 두 뺨을 부둥켜 잡고 소리없이 눈물 흘리는 어머니도 있었다. 
 ‘신세계신문’ 기자 김성욱(金聖郁)은 한 장면이라도 놓칠 새라 열심히 수첩에 옮겨 적고 있었다. 그가 취재하고 있던 현장은 바로 6.25동란에 자원한 재일 동포 학도의용군의 출정식이었다.
 간단한 출정식이 끝나자 어딘가에서 대한민국 ‘건국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장내는 금새 젊은이들의 우렁찬 합창 소리로 가득 찼다. 너나 할 것 없이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김성욱은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동년배의 친구들은 조국을 구하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는 데, ‘나는 한가로이 뭐하고 있나’ 라는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김성욱은 원고지에 기사를 써내려가던 도중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원출정’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께 미처 연락도 드리지 못한 채 내린 즉석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김성욱은 깨달았다. 기자는 언제라도 다시 할 수 있는 일개 직업일 뿐이지만 나라 잃는 것을 좌시한다면 ‘평생의 한’ 이 되리라는 것을…
 당시 6.25동란의 전황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리고 있었다. 한국군은 북한 인민군의 위세에 눌려 대부분의 땅을 내주고 낙동강 하구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부산과 경상도 일부만 함락되면 한반도 전토가 공산화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이하 생략>

❊출전 : 재일동포재단 『재일 동포의 100년 족적』 에서

 

<問題3>取材現場から志願入隊した記者

  1950年9月7日、東京神田にある明治大学近くの駿河台ホテルは、早朝から白いワイシャツと黒いズボン姿に四角の大学帽をかぶった若者たちでにぎわっていた。 友達同士で三三五五集まってお互いに肩を叩きながら気合を入れ合ったり、片方では家族が集まって座りすすり泣いたり、息子の両頬を抑え、声を押し殺して涙を流す母親もいた。 
 「新世界新聞」記者のキム·ソンウク(金聖郁)は一つの場面でも逃すまいと一生懸命手帳に書き写していた。 彼が取材していた現場は、まさに韓国戦争の動乱に志願した在日同胞学徒義勇軍の出征式だった。
 簡単な出征式が終わると、どこかで大韓民国の「建国行進曲」を歌い始めた。 場内はたちまち若者たちの盛大な合唱の声で一杯になった. 誰彼なしに行進曲を歌っていたのだ。 その様子を見ている間、キム・ソンウクは胸の片隅がしめつけられるような感じを覚えた。 同年代の友人は祖国を助けたいと決意を固めているのに、「自分はのんびり何をしているのか」という自責の念に駆られた。キム・ソンウクは原稿用紙に記事を書いている途中、ペンを置いた。そして「志願出征」を決心した。それは母親に連絡もできないまま下した即座の決断だった。しかし、その場でキム・ソンウクは悟った。記者はいつでもまたできる一つの職業にすぎないが、国を失うことを座視するなら「一生の恨み」になるということを…。
 当時、韓国戦争の戦況は、まさに風前の灯火のように危うい状況に追い込まれていた。韓国軍は、北朝鮮人民軍の威勢に押され、大半の土地を明け渡し、洛東江(ナクトンガン)河口を最後の砦とし、辛うじて持ち堪えていた。釜山(プサン)と慶尚道(キョンサンド)の一部だけでも陥落すれば、韓半島全土が共産化される絶体絶命の時期だった。 <以下省略>

❊出典:在日同胞財団『在日同胞100年の足跡』より